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중국 고대 나라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 * 황제 헌원 - 황하의 제사장 헌원 * 황하 - 5제가 다스린 지역 황하 설명 黃자는 패옥(佩玉)이라고 하는 둥근 장신구를 허리에 두른 모습을 그린 것이다. 황금색의 패옥이라는 뜻이 확대되면서 ‘누렇다’나 ‘노래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패자의 구성 佩 : 亻 + 凡(범→패) 凡과 황하의 형태를 비교해서 보면 황하가 왜 황하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하(夏) : 무릎을 끓다 (황하의 지배 영역을 표시하는 것. 황하 서쪽을 외부 세력에 잃음) 하 설명 夏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나타낸다. 여름이란 의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라는 황하의 서쪽을 외부 세력에 빼앗긴 시대를 말한다. 즉, 황하를 다스리던 시대와 구분하여 나타낸 것이다. * 상 (商) : 성을 쌓아 지역을 나누다.. 더보기 고려 서경의 위치(3) - 고려 몽골 전쟁 사람들은 몽골이 고려를 기병을 앞세워 침략한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1차 침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바닷길로 들어왔다. (1) 1차 고려 몽고 전쟁 1125년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하고 북경 지역을 차지한다. 1127년 금나라는 북송의 도읍인 개봉을 점령한다. 1215년 징기스칸의 몽골이 금나라의 연경(북경 지역)을 점령한다. 몽골은 금나라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1234년에 금나라의 도읍 개봉을 점령한다. 1차 고려 몽골 전쟁은 몽골이 금나라의 개봉을 공격하기 전인 1231년에 발생한다. 이는 몽골이 금나라를 공격하기 앞서 고려가 몽골의 배후를 공격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목적이 강했다. 고려는 몽골이 의주와 철주를 점령하자 서경, 자주, 귀주 등에서 방어선을 펴치며 몽골의 공격을 방어한다... 더보기 고려 서경의 위치(2) - 고려 거란 전쟁 분석 (1) 1차 고려-거란 전쟁 993년(성종 12년) 10월 요나라의 동경유수 소손녕(蕭遜寧)이 고려를 침공한다. 993년 5월과 8월에 압록강 부근의 여진으로부터 거란이 고려를 침입할 것이라는 통고가 있었다. 10월에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략하자 고려는 박양유(朴良柔)와 서희(徐熙) 등을 보내 막게 하였다. 성종도 친히 안북부까지 나아가 전선을 지휘하였는데 선봉장 윤서안이 사로잡히고 봉산군을 빼았긴다. 성종은 서경으로 돌아와 이몽전을 소손녕에게 보낸다. 소손녕은 고려의 항복을 요구한다. 이에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서 황주(黃州)부터 절령(岊嶺)까지 국경으로 삼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서희와 이지백(李知白) 등이 항전을 강력히 주장하여 성종의 결정을 이끌어 낸다. 소손녕은 안융진(安戎鎭) 공략.. 더보기 고려 서경의 위치(1) 고려 서경은 평양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고민한 관점은 평양의 의미가 평양성인지, 평양 지역 인지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평소 생각하고 있던 평양성 위치로는 도저히 고려 서경의 위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졸본과 국내성의 위치는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평양성 만큼은 100% 장담이 어렵다. 고려사를 들여다보면 자꾸 서경의 위치가 엉뚱한 곳에 있으니까. 그래서 몇 년을 묵혀두면서 자료를 찾았다. 최근 인터넷을 보니 서경전도에 대한 주장이 있다. 서경전도는 북경지역을 나타낸 그림이라는 주장인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서경의 위치는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서경은 평양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 동북아에서 평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이다. 서경.. 더보기 백제 역사 이해하기 (2) 고구려와의 전쟁 전쟁 이전 상황 342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전연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환도성을 잃었고, 345년에는 전연에게 남소를 잃는다. 고구려는 전연에게 밀리자 백제 쪽으로 활로의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고구려의 움직임을 감지한 백제도 이에 대응한다. 근초고왕 (346년 ~ 375년)은 먼저 신라와의 분쟁 관계를 해결한다. 364년 탁순에 사신을 보내고, 366년에 신라와 동맹을 맺는다. 367년에는 왜와 국교를 맺었고, 368년에도 신라에게 선물로 명마를 보내 우의를 다진다. (1) 치양성 전투 369년 마침내 고구려가 2만의 병력으로 백제를 공격한다. 그런데 고구려로 망명했었던 사기라는 벡제인이 고구려군에 대한 중요 정보를 가지고 백제군에 온다. 그가 가지고 온 정보는 고구려 왕이 있는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 더보기 백제 역사 이해하기(1) - 임나일본부 논파 (1) 포상팔국의 난 백제 초고왕(166년~214년)이 집권하던 209년, 포상팔국의 난이 발생한다. 포상팔국의 난은 8국이 가라를 공격하자 가라 왕자가 신라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신라 태자 우로와 이벌찬 이음, 석우로 등이 8국을 물리치고 가라를 구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해지고 있는 포상팔국의 이름은 아래과 같다. * 삼국사기 - 고사포국(古史浦國), 사물국(史勿國), 칠포국(柒浦國), 골포국(骨浦國) * 삼국유사 - 사물국(史勿國), 고자국(古自國), 보라국(保羅國) 이들 지역의 위치는 아래 그림에 표시하였다. 고사포국과 보라국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칠포국 - 옻칠로 유명한 곳이다. (북한 태천 지역이 옻으로 NO1이다) 고자국의 自의 한자의 뜻은 코를 의미한다. (해안선의 모양이 코처럼 생.. 더보기 고구려 주요 지역 위치 한반도 북부의 지형도를 보시면 그곳은 온통 산으로 뒤덮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이 많아 좋은 밭이 없다는 얘기는 넓은 평야가 부족하다는 뜻이지 온통 산속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또한 1900년대의 기후는 매우 따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북부는 농사 짓기가 힘든 곳입니다. 강수량이 적고, 조금만 추워지면 냉해 피해를 쉽게 받아 요즘도 농사를 안 짓는 곳입니다. 국내성 병사만 수만 명 있었다는데 이들을 먹일 양식을 과연 어디에서 생산했을까요? 유리왕 기록을 보면 왕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농사 지을 만한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을 찾았고,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전쟁사 기록을 반복하면서 지역을 정리하였습니다. 신성과 현토성은 다소 변화가 가능하지.. 더보기 북부여와 동부여 그리고 고구려 위만의 반란으로 고조선은 세개의 지역으로분리된다. 북부지역은 북부여, 중부지역은 위만조선, 남부지역은 진국이 바로 그것이다. 위만은 중국에서 온 망명객이었다.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인 것이다. 그런자가 불법적으로 권좌에 올랐으니 이곳저곳에서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북부여 지역을 하나로 모은 사람은 동명왕이다. 동명왕은 활을 잘쏘고 용맹했지만 왕이 죽이려고 해서 엄호수(시라무렌강)을 건너 와 부여에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동명왕의 타임라인은 기원전 194년 전후이다. 그런데 북부여 기록에는 해모수라는 인물이 있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해모수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기원전 59년에 북부여에 쿠테타가 발생한다. 다물지역이 반기를 들어 북부여왕을 바꾼 것이다...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